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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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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형운 댓글 0건 조회 15,739회 작성일 05-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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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인천 공항에 늦지 않기위해 서둘렀다.
토요일이라 차가 너무 밀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전주에서 인천까지 4시간이 소요되는데 12시에 병원을 나와 아내의 약국에 잠깐 들러 차를 놓고 리무진 버스 정거장에 도착하니 출발 5분전이었다.
그때 마침 후배가 건강치과의사회 소속으로 일주일간 베트남에 봉사 활동을 간다고 하였다.
이번이 6번째라고 하는 말을 듣고 보니 우연히도 나의 이번 몽골 방문 또한 6번째였다.

버스안에서 무엇인가 빠진 듯..해서 지갑을 열어 보니.. 아차.. 신용카드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
순간 걱정이 좀 되었다. 현지에서 호텔비와 필요한 경비를 사용 할 수 있을 정도는 됐지만 선물 등 여행경비가 부족 할 것 같아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실은 아내한테 신용카드를 가지러 갔었는데 버스시간에 쫒기다보니 깜빡했던 것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혹시나 해서 가방과 지갑을 다시 찾아 보았더니 가방에 흰 봉투가 있었다.
아내가 지난번 미국에서 사용하고 남은 달러가 들어 있었다.
순간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인천 공항에는 예상보다 30분정도 일찍 도착하였다.
5시 50분에 김일봉 선생님과 만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6시 10분정도 도착하셨다.
우리는 공항 수속을 마치고 first class laugne에서 비행기를 기다렸다.
언제나 이 시간에는 선생님께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선생님의 삶의 knowhow를 전수받는 시간이라고 할까?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는 7시 50분에 출발하였다.
울란바토르에 11시 20분경에 도착하니 승무원이 밖의 기온이 영하 30도라고 했다.
생각보다 기온이 낮았다. 작년 3월은 그렇게 춥지 않았기 때문에 옷을 가볍게 입고와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공항 밖을 나와 주차장까지 짧은 거리임에도 머리가 얼어버릴듯한 강추위였다.이곳 몽골교정과 회장인 춀몬 선생님이 걱정이 되는 듯 괜찮은지 여러번 물어 보았다.
차안에서도 한참 후에 몸이 정상체온으로 회복되었다.
춀몬선생님 자동차로 호텔로 가는중에 허석구 선생님께서 춀몬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공항에 늦게 마중 나와 우리들을 만나지 못하였다.
12시경 도착한 호텔의 방은 침대 하나의 아담한 방이었다. 짐을 풀고 있을 때 허석구 선생님께서 사모님과 호텔에 도착 하셨다. 허석구 선생님은 6개월 전에 부산에서 개업을 하시다가 이곳 연세 친선 병원에서 선교사로 근무하신다고 하셨다.
이성출 선생님과 이상필 선생님과 막역한 사이라고 하셨다. 한국교정연구회 회원이고 사모님은 한국에서 약사님이셨다. 우리들은 서로 인사를 하고 앞으로 계획에 대해 간단한 브리핑이 있었다. 김일봉 선생님께서는 이곳에 허석구 선생님께서 계서서 무척 다행이라고 하셨다.
두달에 한번 몽골에 오기 때문에 우리들이 계획한 실습이 마무리되지 못했을 때 나머지 부분을 계속 진행 할 수 있기 때문이다.


3월 13일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났다.
6시 30분에 모닝콜을 하였기 때문이다. ^^ 전날 한국시간으로 1시 정도에 잠자리에 들었다.
이곳이 시차가 1시간으로 실제로 4시간 정도 밖에 잠을 자지 않아 무척 몸이 피곤하였다.  
비몽사몽으로 양치와 세수 옷을 갈아입고 식사 하러 갔다.
아침 식사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음식들이 준비되지 않았다. 음식을 기다리는 중이나 식사시간에도 선생님과 여러가지 대화를 나눈다. 그동안 내안에 막혀있었던 많은 것들을 질문하고 선생님께서 다양한 경험담들을 통해 하나씩 풀어주시곤 하였다.
지난 3년동안 선생님과 몽골 등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내 인생의 여행도 시작되었다.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으로 내 꿈을 이루어 질수 있을까하는 내면의 성찰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곤 하였다.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한지 아직도 나 자신은 잘 모르겠다.
내 자신이 아직도 부족하고 배워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아침 식사를 하고 8시 30분에 춀몬 선생님께서 오셨다. 우리들은 이날 강의할 준비물을 가지고 하고 강의실로 향했다.
날씨는 많이 풀려 어제보다 따뜻했다.

강의실은 작년에 7월에 이곳으로 처음 옮겼다.
그때 이곳에서  1년 동안의 마지막 가철식 강의를 마쳤다. 마지막 강의를 마칠 때 대구의 장상건 선생님, 수원의 김지영 선생님, 대구의 김영덕 선생님께서 사모님들과 같이 방문하였다. 작년 옮기기 전의 강의실은 환경이 열악했다.
엘리베터가 작동하지 않아 어떤 때는 걸어서 10층까지 가기도 했고 화장실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매우 불편했었다. 그러나 이곳 강의실은 매우 훌륭하다. 강의실에 20명 정도 실습할수 있는 충분한 공간에다 옆에는 몽골에서는 최첨단 진료실이 개설되었다.
파노라마와 세팔로가 이곳 몽골에서는 이곳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장비들은 김일봉 선생님께서 지원하셨다고 한다.

강의실에 들어섰을 때 작년에 1년동안 course를 했던 선생님들이 대부분이었으나 낮선 선생님들도 몇분있었다. 원래는 10명정도 시작 한다고 했으나 2명이 늘어 12명으로 course를 시작 하게 되었다.
작년에는 25명 정도 가철식 course참여 하였었다. 나머지는 왜 참석하지 못했는지 궁금해 물어보니 이곳 경제사정으로 참석 하지 못했다고 한다. 실습에 필요한 기구의 가격이 400불정도 소요되는데 이것을 마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어떤 선생님은 이 경비를 은행에서 대출 받아 참석 하신 선생님도 계셨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날 현지 치과의사들이 참여할 수 없다고 하였다고 한다.
너무 비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부 선생님들은 실습 기구들을 살 수 없어 course에 참여 할 수 없다고 한 것을 허석구 선생님과 춀몬이 설득하여 강의에 모두 참석 하게 하였다고 한다. 한국에서 우리들이 모든 경비를 자비로 부담하면서 강의와 실습을 위해 여기에 오는데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설득하였다고 한다.

아무튼 오전 강의는 예정대로 시작되었다. 모두들 자신들이 어려운 경제 사정인데도 불구하고 선택한 과정인지 모두들 진지하게 강의에 임하였다.

한참 강의중에 갑자기 방송 카메라가 들어와 촬영을 하였다.
조금은 신기하기도 하고 의아했다. 방송 촬영은 한 개의 방송사도 아니고 첫날과 둘째날까지 5군데 방송국이 다녀갔다.
강의 중간 쉬는 시간에 김일봉 선생님께서는 카메라와 기자와 인텨뷰 있었다. 강의도 마찬 가지지만 인텨뷰도 영어로 진행되었다. 아뭏든 영어는 꼭 배워야 하겠다는 맘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생각되었다. 짧은 영어지만 인텨뷰 내용은 왜 이렇게 몽골에 모든 것을 지원하고 몇 년간 지속적으로 도와주는지 몽골의 치과의 미래는 어떤지 등 많은 질문과 답변으로 진행되었다.
첫날 나에게도 방송 인텨뷰와 촬영이 있었다. 어쩌면 머나먼 타국에서 평생 처음으로 방송 인텨뷰를 했다.
조금은 흥분되고 떨렸다. 우리말도 아닌 영어로 진행되어 더 긴장되었다. TV에서 매일 보는 장면이지만 실제로 방송 카메라와 기자들이 마이크를 가지고 내 자신이 그것도 영어로 이국땅에서 답변한다는 것이 얼마나 흥분되던지...

오전 강의가 끝나고 점심은 한국음식을 먹었다.
오후에는 원래 실습이 진행되기로 하였는데 실습기구가 모두 준비되지 않아 다음날 강의를 미리 하기로 했다. 오전 강의는 4시간 동안 거의 쉬지 않으시고 강의를 하셨다.
오후 강의가 피곤하지 않으시냐고 묻고 너무 피곤하시면 내일 하시라고 말씀 들였으나 그냥 하신다고 하셨다. 전날 수면부족과 여행으로 선생님 강의중에 졸음을 참는데 힘이 들었다.
오후 강의도 4시간 동안 거의 쉬지 않고 진행되었다. 아뭏든 선생님의 체력은 대단하셨다.
오후에는 허석구 선생님께서도 강의에 참석하셨다. 저녁식사 후 휴식을 위해 곧바로 호텔로 갔다. 호텔에서 다음날 강의와 실습준비를 하였다. 처음해보는 강의로 긴장이 되었다.
오기 전에 특별히 준비할 것은 없었지만 내내 신경이 쓰였다.
자료는 지난번 대련에서 강의하신 안은정 선생님의 자료에 다른 내용을 좀더 보강하였다. 호텔에서 영어로 하는 강의 연습을 하였다. 여러번 반복하고 반복했지만 여전히 걱정되었다. 자료를 준비해주신 안은정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둘째날은 모든 강의와 실습을 혼자서 해야 했다. 오전 강의는 매우 긴장이 되었다. 특히 강의중에 반응이 없으면 더 그랬다. 처음 시작할 때 선생님께서 옆에 앉아 계서 긴장이 더 되었다.내 마음을 아셨는지 5분후에 옆에 진료실에 가셨다. 강의는 얼굴 표정을 보면서 진행하였다.뭔가 이해하는 표정이면 계속 진행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 듯 하면 칠판에 그림을 그리면서 오전강의를 마쳤다. 끝나고 어떻게 했는지 정신이 없었다. 실습은 와이어가 충분하지 않아 실습용 round wire로 오메가로부터 shoe-horn까지 마쳤다.
모두들 너무도 진지하고 최선을 다했다. 오후에는 허석구 선생님께서 도와 주셨다.
우리가 마치지 못한 실습은 허석호 선생님께서 매주 토요일 마다 맡아 해주시기로 하셨다.
실습중에도 진료실에서는 김일봉 선생님께서 방송촬영과 인텨뷰는 계속되었다.
오후에는 한국대사관 신상균 영사님 자제분이 김일봉 선생님으로부터 진료받기를 원해 춀몬병원에 내원하였다.
그 덕에 우리는 저녁을 영사님으로부터 대접 받았다.
강의가 끝나고 대사관에서 차와 기사가 우리를 마중나왔다. 대사관 차를 타고 김일봉 이사장님은 춀몬의 차를 타고 영사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갔다. 그 곳은 서울 식당으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몽골에서 제일 크고 유명한 식당이다. 영사 부부가 우리를 마중나와 기다리고 계셨다. 영사님은 나이는 나와 동갑이었으나 얼굴이 매우 동안이었다. 이 곳 몽골에서 15년동안 근무하였다고 한다. 특수지 언어를 구사하기 때문이 오fot동안 근무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몽골에 대한 궁금한 것들을 묻다가 이곳에 기가 막힌 낚시 하는 곳이 있다고 했다.
1m 정도 물고기가 쉴새없이 잡힌다고 하였다. 하루에 200마리 정도를 잡았다고 하니 그야말로 고기반 물반이라고 한다.
그곳까지는 비행기로 울란바트로에서 약 3시간정도 가는데 인간이 거의 접근하지 않는 곳으로 몽골에서 3번째로 끈 호수라고 한다. 자연그대로 남아 있는 오지인 것이다.
김일봉 선생님께서는 벌써부터 흥분이 되시는지 올 여름 휴가지를 이쪽으로 정해 같이 여행할 여행자를 모집하자고 하셨다.
여름 휴가를 몽골로 정하시는 회원님들과 가족분들은 평생 추억으로 간직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사님도 정말 적극 추천하셨다. 신상균 영사님께 저녁식사 감사드립니다.

영사님과 식사 후 우리들은 비행기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발마사지를 받았다.
마사지 받는 중에 9시 뉴스에서 김일봉 선생님께서 춀몬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시고 강의하시는 모습이 화면과 기사로 방송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춀몬은 김일봉 선생님께서 작년에 이 어 2번째로 방송에 나왔다고 하였다. 춀몬은 어제 뉴스에 나의 인텨뷰도 나왔다고 한다.
나는 보지를 못해 그 장면을 copy해 달라고 부탁했다.

10시 30분경에 공항에 도착 하였다. 수속을 마치고 새벽 12시 20분에 인천으로 향했다.
기내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한국에 근무하는 몽골대사가 김일봉 선생님께 인사차 우리가 앉아있는 쪽으로 오셨다. 몽골에서 한국행 비행기가 항상 만원이라고 가벼운 인사를 건내고 몽골 외무부에서 선생님께서 하시는 일을 모두 보고 받았다면서 김일봉 선생님께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번 짧은 방문동안 힘들었지만 큰 보람이 있었다.
지난해 마지막 강의를 끝마치고 환송식 때 이제는 정말 교정을 배우고 싶다고 그들의 소망을 말했었다. 부디 다시 방문해달라고... 지금도 그들의 눈망울이 선하다.
아무튼 다시 시작 하게 되었으니 최선을 다하고 싶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04-06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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